- 변호사 김태진(인천 법무법인 케이앤피)
나는 왜 국민참여재판을 선택하지 않았는가
내가 낙지살인사건을 진행하면서 국민참여재판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내가 우선적으로 고려한 순서부터 이야기 해 보도록 하겠다.
1. 배심 재판을 하기에는 사건이 너무 복잡하다.
우리나라 배심재판은 하루에 끝내는 것이 원칙이다.
만일 재판을 하는데 이틀이 걸린다고 한다면 우리나라에서는 배심원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다음 재판에 출석하라고 한다. 다음 재판에 배심원들 중 일부가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재판의 전반부를 보지 못한 배심원이 피고인의 유무죄를 결정할 수 없다. 계속 배심재판을 해야 한다면 처음부터 재판을 다시 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재판을 하루에 하는 것이 원칙이다. 밤 12시를 넘어서 끝나는 배심재판도 많이 보았다.
낙지살인사건의 1심에서 증인은 22명이었다. 법의학자 2명, 경찰관 2명, 검찰수사관 1명, 119 구급요원 1명, 낙지 집 주인, 여관 종업원, 보험 관계자 3명, 피해자의 가족 3명, 김씨의 형, 피해자의 친구 등 많은 숫자의 증인들이 나왔다.
이정도 증인이 나오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재판을 하려 해도 일주일은 걸릴 것이다.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재판이었다.
미국은 재판이 길어질 경우 배심원들을 호텔에서 재우고 밖으로 못나가게 한다고 한다. 오제이심슨 사건의 경우 배심원들은 LA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267일간 격리되었다고 한다.
(http://www.crimelibrary.com/notorious_murders/famous/simpson/man_8.html)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것이 불가능하다. 나는 이 사건은 국민참여 재판으로 하기에는 불가능한 사건으로 판단했다.
2. 국민참여재판은 재판을 여유 있게 대체할 수 없다.
재판이라는 것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이다. 영화나 연극처럼 모든 쟁점들을 사전에 모두 준비해서 배심원 앞에 “짠”하고 내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검사든 변호사든 수사기록에 적혀 있는 것 이상 사실을 알기 어렵다. 만일 증인으로 나온 A가 갑자기 피고인에게 불리한 말을 하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그 A의 진술이 거짓말이라면? 변호인은 A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다른 증거를 마련해야 한다. A가 x를 보았다는 상황에 대한 반박, A가 X의 인상착의를 묘사하였다면 그 묘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할 자료들의 확보, A가 X와 Y가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면, A가 보았다는 장소의 묘사가 잘못되었거나 A가 X를 보았다는 시간에 X는 다른 곳에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 등에 많은 시간과 준비가 필요하다.
이러한 준비는 하루 이틀에 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무죄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면서 검찰측 증거를 하나 하나 반박해야 하는 변호인의 입장에서는 배심재판은 부담이 된다.
3. 언론의 단정적인 보도는 배심원의 판결에 영향을 미친다.
Irvin v. Dowd, 366 U.S. 717 (1961)(강종선 판사, 미국에서의 배심재판과 언론보도이 규제, 해외 사법소식, 제 71호 2009년 8월 13일에서 그대로 인용한다.)
Irvin사건은 편파적인 사전보도로 인하여 배심원들의 공정성이 문제된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Irvin은 Indiana주 Evansville시 등에서 6건의 살인을한 혐의로 기소되어 Indiana주 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당시 Evansville시 일대의 지역신문들은 재판이 시작되기 6~7개월 전부터 헤드라인,기사,만평,사진들을 통하여 Irvin이 진범이라는 취지의 보도를 지속적으로 하였다.그러한 신문들은 Evansville시가 속한 Vanderburgh카운티6)뿐만 아니라 인접한 Gibson카운티의 주민들 중 95%에게도 정기적으로 배달되었으며,라디오와 TV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Irvin의 성장배경,20년 전에 방화죄 및 강도죄로 처벌받은 사실,군사법원에서 전투 중 탈영죄로 처벌받은 사실,가석방규정 위반으로 기소된 사실,경찰에서의 범인식별절차(Line-up)및 거짓말탐지기 테스트 결과,처음에는 자백을 거부하다가 나중에 6건의 살인사실 전부에 대하여 자백한 사실,그 중 4건에 대하여 기소가 제기된 사실,Irvin측에서 99년형만 약속받으면 유죄협상에 응하겠다고 제안하였으나 검찰측에서사형판결을 받기 위하여 그 제안을 거부한 사실,Irvin이 문제의 살인사건 외에 24건의 강도범행도 자백한 사실(범행수법이 살인범행과 유사하다는 점이 특히 강조됨)등이 연속적으로 보도되었다.보다 드라마틱한 내용으로서는,위 6건 중 1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한 Kentucky주의 어느 보안관이 만약 Indiana주에서 Irvin을 처벌하지 못하면자신의 일생을 걸고 Irvin을 처벌하는 데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공언하였다는 사실이 보도되기도 하였다.또 다른 보도기사는 Irvin을 자신의 잘못을 반성할 줄 모르는철면피의 악한으로 묘사하는 한편 법원에서 선임한 감정의들의 테스트결과 Irvin은 정상적인 판단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보도되었다
편파적인 사전 언론보도로 인한 이러한 심각하고 중대한 편견은 지역사회 전체에만연하고 있었으며,이는 배심원들에게도 그대로 영향을 미쳐 배심원문답(VoirDireExamination)결과 12명의 배심원 중 8명의 배심원들이 재판이 개시되기도 전에 이미Irvin이 범인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Irvin은 이러한 지역사회의 편견을이유로 Vanderburgh카운티 외의 지역에서 재판받게 해 달라는 소송이송7)을 신청하였고 그 신청이 받아들여져 인접한 Gibson카운티로 소송이 이송되었다.그러나 Irvin은 Gibson카운티 주민들 역시 Vanderburgh카운티 주민들과 동일한 편견을 가지고있다는 이유로 다시 소송이송을 신청하였으나,두 번째 신청은 기각되었고 결국 Irvin은 Gibson카운티 법원에서 유죄가 인정되어 사형판결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은 만장일치로 “배심원들이 편파적인 사전 언론보도에 의하여명백하게 영향받았음”을 이유로 Irvin에 대한 유죄판결을 파기하였다.8) 연방대법원은 연방헌법이 배심원들을 당해 사건에 관한 사전 언론보도에 절대로 노출시켜서는안 된다거나 배심원들이 당해 사건의 사실관계와 쟁점에 관하여 완전히 무지일 것을요구하는 것은 아니고,특히 현대와 같이 신속하고 광범위한 대중언론매체의 영향 아래에서,배심원들이 피고인의 유․무죄에 관하여 전혀 아무런 개인적인 느낌이나 감정 없이 재판에 임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임은인정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에 대한 위와 같은 광범위하고 편파적인사전 언론보도로 인하여 배심원들이 영향을 받은 사실이 명백하게 인정되고,이러한상황에서 피고인으로 하여금 전체 구성원의 2/3가 재판개시 전 이미 자신이 유죄라고믿고 있는 배심원들에 의하여 재판을 받게 하는 것은 (즉 피고인의 두 번째 소송이송신청을 기각한 것은)수정헌법 제14조(DueProcessofLaw)에 위반된다고 판시하였다.
낙지살인사건 사건은 언론 보도로 이미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으며,김씨를 범인으로 단정한 상태였다. 배심원들이 “나는 언론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재판에 제출된 증거로만 판단을 할 것이다.”라고 다짐하더라도 무의식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다. 나는 그 위험성을 피하고 싶었다.
4.배심제도를 이용한다고 해도 결론이 바뀔 여지는 거의 없다.
배심제도를 이용하면 무죄를 받을 확률이 높아지거나 낮아질까? 통계적으로 보면 배심재판을 받는 것이 법관으로부터 결정을 받는 것 보다 약간 유리하다.
기본적으로 배심원의 결정과 재판부의 결정은 91%일치한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국민참여재판으로 처리된 321건 중 배심원의 평결과 재판부의 유무죄 판결이 일치한 것은 292건(91%), 배심원의 평결은 무죄이나 재판부 판단이 유죄인 것은 26건, 배심원 평결은 유죄인데 재판부에서 무죄를 선고한 것은 3건이다.(한성훈, 국민참여재판제도의 구조적 문제에 관한 연구, 법학논집 제29집 제2호)
배심원의 평결과 판사의 유무죄 판결이 달라지는 부분은 대개 미필적 고의의 영역이다.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살인의 미필적 고의 인정에 매우 인색, 법률신문 2011. 11. 25.https://www.lawtimes.co.kr/LawNews/News/NewsContents.aspx?serial=60638)
미필적 고의가 다투어 지는 영역은 대부분 살인이다. 칼로 누군가를 찔러 그 사람이 사망한 경우 대부분 피고인은 “사람을 죽이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칼로 찔러 상처만 입히려고 했다거나 겁만 주려고 했다.”는 식으로 주장을 하기 때문이다.이 경우 정말 피고인에게 살인의 고의가 없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이른바 미필적 고의의 문제이다.
법관들은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는 범위가 배심원들보다 훨씬 넓다. 즉 배심원들은 미필적 고의가 없다고 하여 무죄를 선고한 사건에서 재판부는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면서 유죄를 선고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대법원 판례는 살인죄와 관련한 미필적 고의와 관련하여 “살인죄에 있어 범의는 자기의 행위로 인하여 타인의 사망의 결과를 발생시킬만한 가능 또는 위험이 있음을 인식 또는 예견하면 족한 것이고 사망의 결과발생 또는 희망하는 것은 필요치 않으며, 그 인식 또는 예견은 불확정적인 것이라도 소위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한다. 즉 “내가 칼로 찌르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할 정도면 족한 것이고, “저 사람을 죽여야겠다.”는 생각까지 가질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배심원은 그렇게 판단하지 않은 것 같다.
하여간 낙지 살인사건은 미필적 고의와 상관 없는 영역이고, 법관과 배심원의 판단이 달라질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괜히 배심원으로부터 판단을 받았다가 그 결과가 바뀔 여지가 거의 없어질 뿐이다. 이 사안은 배심원이 판단한다고 해서 특별히 더 불리할 것도 유리할 것도 없는 사안이다.
5.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1심에서 유죄를 받게 되면 보통 재판을 통해 유죄를 받은 경우보다 항소심에서 그 결과를 뒤집기가 더욱 어렵다.
나는 김씨의 무죄를 확신하였지만 유죄 판결이 나올 것에 대비 하여야 했다. 만일 일반재판과 배심제도에서 1심에서 유죄를 받으면 그 효과는 2심에서 어떻게 영향을 미칠까
대법원은 "1심에서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만장일치로 무죄의 평결이 내려지고, 재판부의 심증과 일치하여 그대로 채택된 경우 항소심(2심)에서는 원칙적으로 그 판결을 뒤집을 수 없으며, 절차를 거쳐 이루어진 증거의 취사 및 사실의 인정에 관한 제1심의 판단은 실질적 직접심리주의 및 공판중심주의의 취지와 정신에 비추어 항소심에서의 새로운 증거조사를 통해 그에 명백히 반대되는 충분하고도 납득할 만한 현저한 사정이 나타나지 않는 한 한층 더 존중될 필요가 있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10. 3. 25. 선고, 2009도14065 판결)
위 대법원 판례는 배심원이 만장일치로 “무죄”를 결정한 경우를 이야기 하고 있으나, 배심원이 “유죄”를 결정한 경우라 하더라도 비슷한 결론은 비슷할 것이다. 또한 만장일치가 아니라 다수결로 유죄가 나와도 사정은 비슷할 것이다. 즉 국민참여재판을 통해서 유죄로 결정된 경우 그 결정이 잘못되었다는 사정히 “명백하고 충분히 납득할 현저한 사정”이 없다면 뒤집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민참여재판을 통해서 1심이 유죄로 결정되어 버리면 2심이나 3심에서 무죄를 받을 가능성이 거의 낮다고 생각한 것이다.
결론 : 국민참여재판은 형을 조금 받으려 할 때와 미필적 고의인지 인식있는 과실인지를 다툴 때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이용될 수 있다. 그 이외의 영역에서는 국민참여재판과 법관에 의한 재판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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