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김태진
법무법인 케이앤피(인천, 송도)
제 가방에 마약이 들어 있다고요?
얼마 전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저자는 그 영화를 보지 못하였지만 언론 매체를 통하여 그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던 실제 사건의 내용은 대충 알고 있다.
언론에 따르면 친한 지인이 한국 여성에게 원석이 든 가방을 유럽까지 운반해주면 400만원을 주겠다고 제안을 하였고, 가방에 원석이 들어있다고 믿은 한국 여성은 가방을 들고 프랑스로 입국하려고 하였다. 빠리 오를리 공항에서 가방 검색이 이루어졌고, 그녀의 가방에서 코카인이 나왔다는 것이다.
저자도 비슷한 사건을 처리한 경험이 있다. 그리고 이 사건을 처리하면서 “자신은 가방 안에 마약이 들어있는 지 몰랐다.”고 주장한 사건들을 찾기 시작했고, 유감스럽게도 저자는 무죄가 난 사건을 찾지 못하였다.
저자가 다룬 사건의 내용은 이렇다.
영국인 K씨는 백인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길거리에서 시계를 판매하며 생계를 유지하였다. 나이는 30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K는 길거리에서 시계를 팔던 중 나이지리아인 X를 알게 된다. X는 K에게 접근하여 친절하게 말을 걸고 찻집에 가서 차 한잔을 마시자고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약간의 용돈을 주었다. 몇 차례 이러한 만남이 이루어지고 난 뒤 X는 K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였다. 그 곳에는 X의 임신한 아내가 살고 있었으며, X와 그의 아내는 K를 극진히 대접하였다.
길거리에서 시계와 선글라스를 팔며 사람대접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던 K는 X의 호의에 깊이 감동하였고, X와 친하게 지내게 된다. 그렇게 K와 X가 가까워진 뒤 X는 K에게 제안을 한다. 피지에 여행을 보내줄 테니 피지에서 가방을 받아 일본까지 운반해 달라는 것이다. 피지에서 받을 가방에는 불법 복제된 신용카드가 들어있다고 하였다. 불법 복제 카드를 일본에 운반해주는 대가로 피지 여행을 보내준다는 것이었다.
배운 것도 없고, 길거리에서 시계와 선글라스를 팔며 부모에게 얹혀 사는(K의 가족가족뿐만 아니라 K자신도 30이 넘도록 부모와 같이 사는 것을 굉장히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K에게 해외 여행을 보내주겠다는 X의 제안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X는 인터넷으로 피지의 호텔 사진을 보여주면서 “너는 여기서 5일간 머물게 될 거야. 멋지지 않아”라며 K를 들뜨게 했다.
비행 경로는 런던 – 피지 – 한국 – 일본이었다. 한국은 단순히 비행기를 갈아타는 곳으로 K는 한국에 입국하려는 계획은 없었다.
피지에서 꿈 같은 휴가를 보내던 마지막 날 K의 호텔방으로 멋진 여성이 찾아왔다. K는 아름다운 여인으로부터 가방을 건네 받았다. 아름다운 여인은 K에게 가방을 주면서 일본으로 전달해 달라고 했다. 그 여인은 K에게 일본 동경의 호텔이름을 알려주며 그 호텔을 K이름으로 예약했으니 호텔 방에 들어가 있으면 누군가가 가방을 찾으러 올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K는 가방을 받고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는 한국에 착륙하였고, K는 가방을 들고 일본 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인천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비행기에 내리자마자 수사관들이 K를 데리고 공항 한편으로 갔다. 그리고 K의 가방을 분해했다. 가방 바닥은 2중으로 되어 있었고, 가방 안에는 필로폰이 가득 들어있었다. 가방 안에 들어 있는 필로폰은 약 2.5 Kg 시가는 무려 80억원 상당이었다.
나는 전화를 받고 검찰청으로 갔다. 영국인 K는 영어를 할 수 있는 변호사가 필요했고, 나는 미국에서 LL.M. 과정을 마치고 귀국했기 때문에 영어로 의사 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K에게 사건의 개요를 개략적으로 설명 듣고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이야기 해 준 뒤 K의 조사에 참여하였다.
K는 나에게 “자신은 정말 가방 안에 마약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가방 안에는 불법 신용카드가 들어있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나는 “K에게 이미 자신이 어떠한 불법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 이상 무죄를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 해 주었다. “그렇지만 형을 감경받기 위해 사실과 달리 자신이 마약을 운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인정할 필요는 없다”고 알려주었다.
영국에 있는 K의 가족 또한 난리가 났다. 멍청하고 바보같은 형, 오빠가 외국에까지 나가서 사고를 친 것이다. 가족들 또한 K에 대하여 이만저만 걱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일단 K의 가족들에게 “한국의 사법제도는 매우 잘 정비되어 있으며,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 질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K가 무죄가 될 확률은 아주 낮으며 형을 최대한 낮추는 것이 나의 목표”라고 말해 주었다. K의 가족들도 수긍하는 모습이었다.
영국 영사관과도 긴밀한 협조가 이루어 졌다. 나는 영국인의 변호인으로서 영국 영사관에 K에 대한 사건 정보를 최대한 제공하였다. 영국 부영사님도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 나라 영사관도 영국 영사관 부영사님처럼 자국민 보호에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K는 자신의 가방에 마약이 들어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받겠다고 하였으나 검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드디어 K는 검찰에 의해 기소가 되었고 나는 비로소 사건 기록을 볼 수 있었다.(피고인이 기소가 된 이후 변호인은 비로소 사건 기록을 열람할 수 있다.)
K는 이미 수사기관에 의해 주목을 받고 있었다. K의 비행기표는 국제 마약조직이 만연한 나이지리아에서 누군가에 의해 결제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수사기관은 피지와 한국을 거쳐 제3국으로 입국하는 마약조직의 패턴을 파악하고 있었고, 나이지리아에서 결제된 비행기 표로 유럽의 각국을 출발하여 피지와 한국을 거쳐 제3국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리스트를 확보해 놓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리스트가 확보되면 그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은 한국에 도착하자 마자 짐 수색을 받게 된다. K 또한 이러한 방법으로 짐 수색을 당하였고, 마약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나는 K의 변호인이므로 K를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했다. 나는 K가 자신이 운반하는 것은 불법 복제된 신용카드라고 생각했다는 점에 대해 입증해야 했다. K에게 가방 운반을 제안했던 X는 나이지리아인이므로 나이지리아 인들에 의한 신용카드 불법 복제 행위에 대한 자료들을 준비하였다. 우선 미 국무부에서 작성한 세계 각국에 대한 여행 안내서에서 나이지리아에 대한 설명을 인용하였다. 나이지리아에서는 신용카드 불법 복제가 흔히 일어나고 있으므로 나이지리아에 여행하는 여행객들은 신용카드 사용을 조심하라는 내용이었다. 이와 더불어 전 세계 신문들을 검색해서 나이지리아 범죄조직이 신용카드를 불법 복제하다가 걸린 사례들을 검색했다.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나이지리아 신용카드 복제 조직이 적발된 사례를 찾을 수 있었다.
또한 나는 영국에 있는 K의 가족들에게 K의 학창시절 생활기록부를 달라고 했다. 생활기록부에는 K는 주위가 산만하고, 학습능력이 떨어진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또한 K가 당뇨병과 우울증을 앓고 있어 외국에서의 수형생활을 감내하는 것은 더욱 힘들다고 주장하였다.
K로부터 이메일의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넘겨 받은 후 K의 이메일도 검색하였다. K와 X 사이의 메일을 면밀히 검토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마약에 대한 언급은 하나도 없었으며, 불법 신용카드에 대한 언급 또한 없었다. 이들은 단지 “물건(the things)”이라고만 대상을 칭할 뿐이었다. 이는 K에게 유리한 증거라고 볼 수 없었다. 왜 신용카드라는 대화내용이 단 한마디도 없었는지 아쉬울 뿐이다.
검찰은 “한국이 마약 청정국이기 때문에 한국을 통해서 일본에 입국할 경우 검색이 상대적으로 느슨하게 이루어지고, 그 때문에 K가 한국을 경유해 일본에 들어가려 한 것이다.”라는 주장을 하였다. 나는 국제 항공권 예약과 관련된 웹사이트(Expedia)를 통해 “피지에서 일본으로 직접 들어갈 수는 없고 한국이나 중국, 기타 어느 한 곳을 반드시 경유해야 하며, 한국을 경유하는 항공권이 가장 저렴하다. 이것이 K가 한국을 경유해 일본으로 들어가려고 한 이유이다.”라고 반박을 하였다.
그리고 K는 지능이 낮고 멍청하기 때문에 국제 범죄조직의 표적이 되었으며 K는 불법 신용카드를 운반해 달라는 국제 범죄조직의 말을 쉽게 믿은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동시에 가난하고 여행 한번 제대로 해 보지 못한 K에게 피지 여행은 거절하기 힘든 제안이었다고 주장하였다.
나는 K가 머물고 있던 호텔에서 K에게 가방을 주기 위해 국제범죄조직의 일원인 그 아름다운 여성이 가방을 들고 K방으로 들어가는 CCTV영상을 확보하기 위하여 피지 호텔에 연락하였다. 그런데 호텔에서는 K가 호텔요금을 납부하지 않고 도망갔기 때문에 CCTV영상을 줄 수 없다고 하였다. 나는 영국에 있는 K의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숙박비를 납부하고 CCTV영상을 확보하자고 하였으나 K의 가족들은 이미 K때문에 많은 돈을 지불하여(나의 변호사 비용도 이에 포함된다.) 더 이상 비용을 지출하는 것은 경제 사정상 너무 어렵다고 하였다. 나로서도 CCTV영상은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단계에서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재판 결과는 징역 3년. 이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결과이다. 마약을 아주 조금만 밀수해도 징역 3년 정도 나온다. 마약을 2Kg 밀수했는데 징역 3년이라는 것은 실로 대단한 성공이었다.
가족들도 고마워했고, K자신도 결과에 어느 정도 만족해 했다. 나는 K와 그 가족들에게 이렇게 위로했다. “만일 국제 범죄조직이 중국을 경유하는 비행기표를 사 주었다면 당신은 중국에서 사형을 당했을 것이다. 만일 대만을 경유하는 비행기표를 사 주었다면 당신은 15년에서 20년을 살았을 것이다. 한국에서 붙잡힌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라. 그리고 나를 만난 것을 행운으로 생각해라. 징역 3년은 정말 가벼운 처벌이다.”
80억원 상당의 마약밀수의 대가가 징역 3년이라는 것에 대해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은 다소 의아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욕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재판부가 “K가 정말 마약인지 몰랐을 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죄를 선고할 수는 없다. 그런 전례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전세계 어디에도 “나는 마약인줄 몰랐다.”는 주장만으로 무죄를 선고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세계 곳곳에서 한국인이 마약인 줄 모르고 어떤 물건을 운반하다가 처벌을 받았다.”는 기사를 접하게 된다. 이렇게 세계 각국에서 처벌받는 한국인 중에는 정말 마약이 들어있는 지 모르고 가방이나 다른 물건을 운반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의뢰인이었던 K가 한국에서 처벌을 받았듯이 그들도 각 나라에서 처벌을 받아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형사 정책적으로도 “마약인 줄 몰랐다.”는 주장을 쉽게 받아준다면 마약 밀수범을 처벌하는 것이 어렵게 되므로 세계 각국의 법원에서는 “마약인 줄 몰랐다.”는 주장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정해 주지 않는다.
얼마 전 나는 지인으로부터 “어떤 사람이 대만 공항에서 마약이 든 가방을 운반하다가 체포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지인에게 나의 경험을 이야기 해 주며 “제3국을 경유했을 것이며, 제3국에서 물건을 받았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라고 이야기 해 주었다. 나중에 신문 검색을 해 보니 나의 추축이 맞았다. 내가 경험한 사건처럼 체포된 한국인들은 그들이 “자신이 운반하는 가방에 마약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아니면 정말로 몰랐는지”에 관계 없이체포된 나라에서 유죄를 받을 확률이 매우 높다. 그리고 그들은 K의 경우와 같이 항공권을 구입하는 단계에서부터 이미 대만 수사기관의 표적이 되어 있었을 지도 모른다.
경제적 대가를 받든 아니면 단순 호의이든지 간에 다른 사람의 대신 운반해 주거나 다른 사람의 가방을 절대 들어주어서는 안될 것이다. 정말 억울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형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형사사건 사례(2014. 9. 3.) - 고소대리 김태진 변호사 (0) | 2017.04.20 |
---|---|
형사 사건사례(2014.6. 27.) -사기 혐의없음 김태진 변호사 (0) | 2017.04.19 |
[인천 송도]소송과 관점 - 법무법인 케이앤피(K&P) (0) | 2017.03.25 |
뇌물죄 - 법무법인 케이앤피(K&P) "김태진" 변호사 (0) | 2017.03.22 |
법의학의 맹점 - 법무법인 케이앤피(K&P) '김태진 변호사' (0) | 2017.03.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