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김태진
법무법인 케이앤피(인천, 송도)
'잘못쓰면 너무나 위험한 지식'
많은 사람들이 미국 드라마 CSI나 우리나라 드라마 싸인 등을 보면서 법의학자들이 억울한 죽음을 밝혀 내고 진범을 잡는 모습에 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나 여러 대학의 법의학 연구소에서 변사체에 대한 사인을 밝혀 범인을 잡는데 큰 공헌을 하고 있다.
그러나 법의학을 동원하여 누군가의 죄를 밝히는 것이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위험할 수 있다. 경찰이나 검찰이 법의학자에게 사건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제공하기 보다는 피의자나 피고인을 유죄일 것으로 추단할 수 있는 정보를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선별하여 제공할 가능성이 높고, 이 경우 법의학자는 자신에게 제공된 제한된 정보만을 가지고 판단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떤 변사체가 발견되었다. 사고사 또는 타살 둘 중 하나다. 그런데 경찰이 사고사로 생각할 수 있는 자료들은 법의학자에게 보내지 않고 타살로 보일 수 있는 자료만 법의학자에게 보냈다고 하자. 결론은 어떻게 될까? 타살로 결론이 난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다. 법의학자는 주어진 자료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 분석했지만 제공된 자료가 불완전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이다.
내가 무죄를 받아내었던 낙지살인사건을 가지고 설명을 해 보겠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음식을 먹다가 질식했다고 한다면 이는 음식물이 기도에 들어가 꺼낼 수 없는 상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도는 식도의 앞부분에 있는데, 음식물을 삼켰으나 식도로 음식물이 넘어가지 않고 기도로 넘어갔고, 음식물이 점점 기도 안으로 깊이 들어가 손으로 꺼낼 수 없게 된 상태가 될 수 있다. 결국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버려 제대로 숨을 쉴 수 없게 되는 상태가 되는데, 이렇게 되면 질식으로 사망에 이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낙지는 통낙지였다.(과연 사건 현장에 떨어진 낙지가 먹을 수 있는 크기의 낙지였는지에 대하여 법정에서 다툼이 있었고, 나는 현장 사진을 분석 의뢰하여 현장에 있던 낙지는 먹을 수 있는 크기임을 입증하였다.) 그리고 통낙지를 먹다가 질식하는 경우는 낙지가 식도까지 들어가지 않고 후두부에 걸릴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낙지를 손으로 꺼내는 것도 가능하다.
그런데 법의학자에게 “피고인이 피해자가 낙지 다리를 먹다가 사망하였다고 말하였는데 피해자의 기도에서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피해자의 사인을 분석해 주세요”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될까? 법의학자는 분석을 하면서 음식물로 인한 질식사의 가능성을 배제해 버릴 수 있다. 그리고 남은 가능성만을 찾는 것이다. 통낙지를 먹다가 질식하였을 가능성, 질식을 야기한 통낙지가 입에서 제거되었을 가능성을 추단케 하는 자료들을 빼고 법의학자에게 분석을 의뢰하는 것이다.
그러면 수사기관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나는 법의학자에게 이 사건의 분석을 의뢰하면서 증거기록 일체와 소송기록을 제공하였다. 내가 필요한 자료를 선별한 것이 아니라 법의학자로 하여금 모든 자료를 보게 한 것이다. 그러자 피해자가 낙지로 인하여 질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왔다.
간혹 상담을 하다보면, 수사단계에서 분석한 법의학자의 감정서를 보고 억울해하면서도 자포자기 하시는 분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러나 정말 억울하다면 포기할 것이 아니다. 모든 자료를 검토해서 종합적으로 판단해 줄 법의학자를 찾아야 한다. 경찰이나 검찰이 자료의 일부만을 제공함으로써 법의학자가 최선을 다해 사인을 분석하였는데도 잘못 되었을 가능성이 있음을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 한가지 조심할 사항이 있다. “000할 가능성이 있습니다.”라는 분석을 그대로 믿는 오류이다.
다시 한번 낙지살인사건을 예로 들어보자. 법의학자들은 공히 제3자가 피해자의 입과 코를 막아 피해자가 질식하였을 경우에도 피해자의 입안이나 입술주변에 상처가 나지 않을 수 있다고 하였다.
1심 재판부는 제3자가 입과 코를 막아 강제로 질식시켰음에도 입안과 밖에 상처가 나지 않게 하려면 피해자가 어떤 상태일 때 상처가 나지 않는지, 상처가 나지 않을 확률은 얼마나 되는지, 피고인이 그런 경우에 해당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합리적 추론을 하지 않고, 제3자가 입과 코를 막아 피해자가 질식하였을 경우에도 입안과 밖에 상처가 나지 않을 수 있다는 법의학자의 일반론적인 소견을 근거로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하였다고 단정해 버렸다.
2심에서 나는 “피해자가 입안이나 밖에 상처가 나지 않고 살해당할 확률”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법의학자들에게 질문하였다.
한 법의학자는 1천 건을 부검하였는데 입안이나 밖에 상처가 나지 않고 입과 코를 막아 살해한 사건을 보지 못했다고 했고, 다른 법의학자는 2천 건을 부검하였는데 역시 입안이나 밖에 상처가 나지 않고 입과 코를 막아 살해한 사건을 한 건도 보지 못했다고 하였다. 오히려 내가 분석을 의뢰했던 법의학자는 1만건을 검안하였는데 60대 말기암 환자의 아들이 산소 호흡기를 떼고 아버지의 입과 코를 막아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 사건에서 입의 안이나 밖에 상처가 나지 않은 시신을 확인하였다고 진술하였다.
입안이나 밖에 상처가 나지 않게 입과 코를 막아 살해한다는 것은 현실 세계에서는 지극히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다. 검찰 또한 지금까지 수 많은 살인사건을 다루어 왔지만 입 안과 밖에 상처가 생기지 않게 입과 코를 막아 사람을 살해한 사건을 단 한 건도 제시하지 못하였다.
“000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000이 일어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이 사건도 000이 이유가 되어 발생한 것으로 합리적 의심 없이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이다. 그리고 후자에 해당되는 경우에만 유죄로 인정되어야 하고 단순한 가능성을 근거로 무죄추정의 원칙을 깨고 유죄를 선고할 수 없음은 형사재판의 기본원칙이다.
그러나 현실 재판과정에서는 수 많은 오류가 일어난다. 법원에서 일어나는 많은 오류들은 시정되지 아니한 채 억울한 피고인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상당부분 있는 것이다. 일정부분은 변호사들에게 책임이 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법의학자들의 권위에 의존하여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고 성급히 판단을 내리는 재판부에게도 그 책임이 있다.
전문가의 권위를 존중하고 그들의 의견을 귀담아 들어야 하겠지만, 그들이 제공받은 한정된 자료로 인하여 최선을 다하여 사건을 분석했으나 그 결론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 그들의 의견을 성급하게 일반화 시키는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법률가들, 변호사 뿐만 아니라 특히 유, 무죄를 판단해야 하는 재판부로서는 좀더 유념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법률가들도 최소한의 법의학적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낙지 살인사건의 경우 1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얼굴 표정이 온화하다.”는 것을 타살의 증거로 거시하였는데 이는 매우 잘못된 판단이다.
사람이 의식을 잃으면 자살이든 타살이든 근육의 힘이 풀리기 때문에 얼굴 표정은 온화해 보인다는 것은 형사사건과 관련된 최소한의 법의학적 지식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변호인인 나도, 피고인을 기소한 검찰도 피해자의 온화한 얼굴표정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앞으로 이런 실수가 다른 재판부에서 반복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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